연꽃 > 포토 에세이 | 사진이야기 | 이철수 사진가 사진작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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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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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 한 주일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 9시 전주에 있는 덕진공원으로 향했다.

결코 깨끗하지도 않은 더러운 물에서만 자라면서도, 그 더러움에 전혀 물들지 않고, 깨끗하고 깔끔하게 가꾼 잎 위에 곱고 아름다운 꽃을 화사하게 피우는 연꽃을 촬영하기 위한 것이다.

12시가 넘어 도착한 덕진공원의 입구 앞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잠시 잠을 청한 뒤,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 카메라 삼각대 등을 챙겨 곧장 덕진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올해 연꽃들은 어떤 모습과 어떤 자태를 뽐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한 가벼운 흥분이 머릿속을 지배할 쯤, 무수히 많은 연꽃들 앞에서 내 발걸음은 그대로 땅에 붙어 버렸다.

나보다 먼저 들어온 많은 사진인들의 행위에 오도 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발걸음이 묶여버린 것이다.

연꽃잎을 찢어서 그 찢어진 연꽃잎 속에 연꽃을 꽂고 촬영을 하는 사진인, 긴 낚시대로 연꽃 앞의 지저분한 것들을 치우는 사진인, 연꽃 잎 하나만 달랑 남겨두고 다 떼어내고 촬영하는 사진인, 기다란 장화를 신고 연꽃 속을 헤집고 다니는 사진인 등 정상적인 사진인은 한 사람도 없을 지경으로 무법천지들의 장면이 나의 발걸음을 굳게 만든 것이다.

저 무리들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이대로 다시 나갈 것인가에 대한 순간의 갈등 속에서...
연꽃대, 연꽃잎, 연꽃 등 그 어느 것 하나 손끝 하나 닿지 않고 촬영할 것이며, 남이 손대 놓은 것 같은 연꽃은 촬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간단한 답 하나 찾아내 그 무리들 속으로 당당하게 들어가 촬영을 시작했다.

저 무리들이 헤쳐 놓은 연꽃들 속에 과연 내가 촬영할 연꽃들이 남아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촬영이 시작되는 순간 사라지고, 오로지 나의 눈엔 황홀한 장면들이 이어지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는 것도 모르고 셔터를 눌러댔다.

무수한 연꽃들의 향연들 속에는 아름답고 화사한 연꽃들 못지않게 수줍은 연꽃들이 모습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아름답고 화사한 연꽃은 자신을 손대지 않는 나를 향해 화사한 웃음으로 보답하는 것처럼 보이고, 수줍은 연꽃은 자신을 손대지 않는 나에 대한 연민에 홍조 띄며 수줍어하는 것 같아 촬영내내 화사한 연꽃에 물들고 수줍은 연꽃들과 숨바꼭질을 했다.

온몸이 땀에 젖고 허기를 느끼는 10시경에 연꽃과 어우러진 한바탕 신바람을 뒤로 하고 덕진공원을 나오는 내 발걸음은 아침 발걸음 보다 더 가볍다.

저 더러운 물에서 자라면서도 깨끗하고 순결한 꽃을 피우며,
저 더러운 물에서 자라면서도 잎은 지혈제, 뿌리줄기와 열매는 부인병치료에 사용되고,
뿌리(연근)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높게 함유되어 요리에 사용되어 버릴 것 하나 없는 고귀한 식물인 연꽃처럼,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무질서와 파괴를 일삼는 사진인들 틈에 끼여서 결코 그들에 물들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며, 앞으로도 자연은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지키고자 다짐하는 값진 하루였다.

- 1996년 8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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